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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축구팀 유니폼에 왜 고구려의 "삼족오"를 달았을까?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27. 11:11

 

日축구팀 유니폼에 왜 고구려의 "삼족오"를 달았을까?
[도깨비 뉴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삼족오’가 왜 일본 축구국가대표팀의 엠블렘으로 사용되고 있나요?”
한국과 일본은 완벽히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 문제’로 인해 여러 부분에서 경쟁 심리가 작용할 때가 많다. 한 예로, 한국과 일본의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TV중계를 시청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 물론, 90년대 비약적으로 발전한 일본축구의 전력과 아시아의 전통적 강호 한국의 전력이 서로 비슷해 "도쿄대첩"과 같은 "명승부"가 펼쳐지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삼족오와 일본 축구대표팀 마크 비교


그러나 한일전이 끝난 후 사이버 세상에서는 스포츠와 관계없는 "역사 승부"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바로 일본 대표팀의 유니폼에 새겨져 있는 일본축구협회의 엠블렘이 고구려의 대표적인 상징 삼족오(三足烏)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언론이나 교육을 통해 접했던, 대표적인 삼족오 그림은 중국 길림(吉林) 지방의 각저총, 오회분 4호묘, 북한 평안남도의 덕화리 1, 2호분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발견되는 것들이다. 그것의 모양은 이름 그대로 세발이 달린 까마귀가 동그란 원속에 들어가있는 형태로 학자들은 이를 남성과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또 일부 학자들은 까마귀가 아니라 봉황을 그린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역사의 비밀( http://www.coo2.net )"의 운영자이자 재야 사학자인 송준희씨는 “삼족오는 천손(天孫)의식을 갖고 있던 동이족 고유의 상징이며, 고구려가 중국과 다른 천하관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3이란 숫자는 한민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표적으로 "삼신신앙" 등을 꼽았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그리고 언제부터 삼족오를 축구협회 엘블렘으로 사용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한국 근대사를 전공한 "대한민국 독도사랑회( http://cafe.daum.net/dokdocorea )" 운영자 조창용씨는 “일본이 삼족오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이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양국의 조상이 하나라는 일선동조론을 한국인들에게 세뇌시켰는데 그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했다. 즉 삼족오가 조선인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 의견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연세대 강사인 우실하씨는 “삼족오는 이미 기원전 4000년경의 중국 앙샤오(仰韶)문화 유적지에서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다”라고 말하며 ‘삼족오 한민족 기원론’이 잘못된 것임을 밝혔다. 또 그는 “일본도 나름대로 북방문화의 전통을 전해 받아 "기토라 고분" 등 삼족오와 관련된 유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할 자격이 있다”라며 “한국인들이 선조들의 유산을 일본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라고 피력했다.

삼족오를 막연히 고구려만의 것으로 인식했던 네티즌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있다. ‘네이버 지식인’의 "6namja"님은 “일본축구협회( http://www.jfa.or.jp/) 홈페이지에는 삼족오가 중국 고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나와있고, 고구려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라며 “도대체 주인이 누구냐”라고 말했다. 또 다음카페 "바로잡아야할 역사( http://cafe.daum.net/realhistory )"의 "dlee79"님은 “우리는 전통이나 역사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다. 이제 삼족오마저 빼앗기게 생겼다”라고 개탄했다.

이런 논란에 동국대학교 사학과 윤명철 교수는 “삼족오는 분명 고구려만의 상징물이 아니듯 또한 중국 문화만의 산물도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주목해야 할 것은 삼족오가 고구려인들에 의하여 문화의 주요한 요소로 채택되고, 집요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다”라며 “해의 자손임을 선언한 그들에게 까마귀는 매우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으로 볼 때 “삼족오는 동이족에게 신비스러운 태양의 새로 인식된 반면 한족에게는 북방을 나타내는 흉조였다”라고 피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금 삼족오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철학적 의미, 미래적 가치를 찾는 계기가 필요하다”라고 성토했다.

도깨비뉴스 리포터 아사달 youngkang21@dkbnews.com
[도깨비 뉴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삼족오’가 왜 일본 축구국가대표팀의 엠블렘으로 사용되고 있나요?”
한국과 일본은 완벽히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 문제’로 인해 여러 부분에서 경쟁 심리가 작용할 때가 많다. 한 예로, 한국과 일본의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TV중계를 시청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 물론, 90년대 비약적으로 발전한 일본축구의 전력과 아시아의 전통적강호한국의 전력이 서로 비슷해 "도쿄대첩"과 같은 "명승부"가 펼쳐지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삼족오와 일본 축구대표팀 마크 비교


그러나 한일전이 끝난 후 사이버 세상에서는 스포츠와 관계없는 "역사 승부"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바로 일본 대표팀의 유니폼에 새겨져 있는 일본축구협회의 엠블렘이 고구려의 대표적인 상징 삼족오(三足烏)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언론이나 교육을 통해 접했던, 대표적인 삼족오 그림은 중국 길림(吉林) 지방의 각저총, 오회분 4호묘, 북한 평안남도의 덕화리 1, 2호분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발견되는 것들이다. 그것의 모양은 이름 그대로 세발이 달린 까마귀가 동그란 원속에 들어가있는 형태로 학자들은 이를 남성과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또 일부 학자들은 까마귀가 아니라 봉황을 그린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역사의 비밀( http://www.coo2.net )"의 운영자이자 재야 사학자인 송준희씨는 “삼족오는 천손(天孫)의식을 갖고 있던 동이족 고유의 상징이며, 고구려가 중국과 다른 천하관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3이란 숫자는 한민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표적으로 "삼신신앙" 등을 꼽았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그리고 언제부터 삼족오를 축구협회 엘블렘으로 사용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한국 근대사를 전공한 "대한민국 독도사랑회( http://cafe.daum.net/dokdocorea )" 운영자 조창용씨는 “일본이 삼족오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이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라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양국의 조상이 하나라는 일선동조론을 한국인들에게 세뇌시켰는데 그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했다. 즉 삼족오가 조선인들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 의견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연세대 강사인 우실하씨는 “삼족오는 이미 기원전 4000년경의 중국 앙샤오(仰韶)문화 유적지에서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다”라고 말하며 ‘삼족오 한민족 기원론’이 잘못된 것임을 밝혔다. 또 그는 “일본도 나름대로 북방문화의 전통을 전해 받아 "기토라 고분" 등 삼족오와 관련된 유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할 자격이 있다”라며 “한국인들이 선조들의 유산을 일본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라고 피력했다.

삼족오를 막연히 고구려만의 것으로 인식했던 네티즌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있다. ‘네이버 지식인’의 "6namja"님은 “일본축구협회( http://www.jfa.or.jp/) 홈페이지에는 삼족오가 중국 고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나와있고, 고구려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라며 “도대체 주인이 누구냐”라고 말했다. 또 다음카페 "바로잡아야할 역사( http://cafe.daum.net/realhistory )"의 "dlee79"님은 “우리는 전통이나 역사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다. 이제 삼족오마저 빼앗기게 생겼다”라고 개탄했다.

이런 논란에 동국대학교 사학과 윤명철 교수는 “삼족오는 분명 고구려만의 상징물이 아니듯 또한 중국 문화만의 산물도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주목해야 할 것은 삼족오가 고구려인들에 의하여 문화의 주요한 요소로 채택되고, 집요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다”라며 “해의 자손임을 선언한 그들에게 까마귀는 매우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화적인 측면으로 볼 때 “삼족오는 동이족에게 신비스러운 태양의 새로 인식된 반면 한족에게는 북방을 나타내는 흉조였다”라고 피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금 삼족오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철학적 의미, 미래적 가치를 찾는 계기가 필요하다”라고 성토했다.

도깨비뉴스 리포터 아사달 youngkang21@dk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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