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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21세기 한국의 선진화를 위한 과제

인생멘토장인규 2008. 10. 20. 14:11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바탕, 사회적 약자 배려 시스템 필요
 
    
 4월 총선이 끝나고 대한민국은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정치권을 비롯해 각계 전문가는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업코리아는 선진화란 과연 무엇이며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지 세 분의 교수를 모시고 좌담회를 열었다.
 
참석자 : 홍원탁 교수(서울대 경제학부)
             박지향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
             이각범 교수(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경영학부, 사회)
 
- 4월 총선 이후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인가
 
이각범 : 우리나라가 성립할 때부터 갖고 있던 과제는 명실상부한 자주독립국가를 이루는 것과 민주복지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주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필요하다.  동시에  민주복지사회를 만들어 골고루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아울러서 가려면 선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의 위상의 더 높아지려면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야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4월 총선 이후 시대적 과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갈 지 우선 합의해야
 
홍원탁 : 바로 현 시점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도대체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말 자유민주주의를 소홀히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보통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이해를 못하는 민주주의 개념정의 때문에 모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를 분명하고 정직하게 밝히고 나갈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과연 상이한 의견이 표출되는 다원주의 사회를 싫어하고 획일적인 사회를 원하는지도 분명하게 가려야 할 것이다. 분명한 정리가 없이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개념을 가지고 논쟁을 하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정할 수가 없고 국가적인 혼동상태만 지속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와 혼동 상태에서 계속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선진화의 개념, 의미
 
박지향(오른쪽 사진) : 선진국의 개념도 총선을 승리로 이끈 세력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보수 쪽은 개인의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통해 국부를 창출하여 더 큰 파이를 만든 후 모든 사람을 잘 살게 만들자는 것인데 이른바 진보세력들은 국민소득 1만불을 달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국민소득이 5천불이라도 평등하고 싸우지 않고 사는 것이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이각범 : 그렇다면 선진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선진국이라 하면 OECD국가가 누리는 경제적 수준을 갖추고 세계의 정치역학관계 속에서의 국력을 갖춘 나라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주류가 된 사람들은 선진국의 개념을 국민소득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대중들이 지배하는 사회, 골고루 잘 사는 사회, 우리 민족이 자결할 수 있는 사회를 선진국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는 우선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경쟁적 시장경제체제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홍원탁 : 지금 자칭 진보세력들이 지향하는 하는 선진국이란 개념은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 해 본적이 없는 유토피아를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지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우습게 생각하고 또 법치주의를 우습게 여기는 국민들이 선진국을 이룩한 경우가 있는가를 모두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박지향 : 백낙청 씨가 최근 펴낸 책을 보면 탈자본주의화해서 적당히 못살면서 행복한 나라에 대한 말이 있는데 이를 일컫는 것 같다.
 
홍원탁 : 나는 “자본주의”라는 시대착오적 표현을 별로 안 좋아한다. 빌게이츠가 자본가라서 그렇게 큰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 현대 경제사회에서는 유능하고 창의적인 기업가에게 다양한 금융시장이 열려있는 것이다. 단순히 자본을 가지고 있는 계층이 경제를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나는 경쟁적 시장경제를 얘기하는데 그 분(백낙청)이 얘기하는 선진경제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박지향 : 현재 가능한 모든 대안들이 마음에 안들기 때문에 새로운 이상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이각범 : 스스로 진보적이라 일컫는 인사들과 조중동과 대립각을 세우는 일부 신문에 고정적으로 기고하고 계신 교수님들과 토론했을 때 그분들은 일단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자주국가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분들에게는 선진국이라는 개념보다는 자주국가라는 개념에 더욱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이다. 북유럽의 강소국 같은 선진국보다는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예를 들어 베트남과 같은 나라에 더욱 큰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2002년에 촛불시위할 때 그 얘기를 했었는데 우리가 선진국에 대한 개념을 얘기할 때 지향해야 할 나라의 이념형에 대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원탁 : 90년대 초, 하노이에서 스워덴 경제학자들 주관으로 세미나를 한 적이 있는데 지압 장군(호치민과 함께 베트남 근대사의 양대 영웅으로 꼽히는 장군 : 편집자 주)이 무임소 장관의 자격으로 참여했었다. 지압이 하는 얘기는 베트남 인민들이 프랑스, 미국과의 전쟁에서는 오래전에 모두 승리했지만 그 후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는 실패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서구학자들을 불러서 (그 가운데 남한 경제학자도 하나 참여시켜) 하는 얘기들을 모두 경청하고 자기들의 도이모이(베트남어로 ''개혁.개방''을 뜻함) 방향을 모색하려는 것이라 했다.
 
이각범(왼쪽 사진) : 이 논쟁이 나온 배경에는 우리에게 미국이 무엇인가 하는 인식차이가 있다. 우리가 안보를 유지하고 안보의 바탕 위에서 경제를 발전시켜야 선진국이 되는데 미국은 안보의 버팀목이며 세계체제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반미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면 결국 안보와 경제에 어려움이 오게 된다는 주장을 하면 친미주의자로 몰리게 된다. 그리고 이 논리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미국에 의존적인 나라가 없다'' ''미군이 뭐가 필요하다고 해서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오히려 미국을 물리친 베트남을 방문해보니 그 나라는 희망에 차 있다는 식의 인식으로 대항한다.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나라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고 논리 전개도 달라진다.
 
홍원탁 : 중.고교에서 인류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 치명적인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규모 청년실업 현상이 심각하게 되었는데 이 문제가 이미 멸망한 공산권이 시도했던 방법으로 해결될 리도 없고,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고 명령을 한다고 해결 될 것도 아니다.
 
선진국의 필수조건은 경제적 번영
 
박지향 : 많은 나라의 경우 선진국이 되는데 필요한 필수조건이 경제적 번영이다. 먹고 사는데 급급해선 선진문화가 나올 수가 없다. 가장 최근 아일랜드의 경우 70년대까지 굉장히 못사는 나라였는데 지금은 EU에서 두 번째의 국민소득을 갖춘 국가가 되었다. 모든 면에서 후진국이었는데 80년대부터 경제가 풀리니 선진문화 또한 성취할 수 있었다. 일본도 패전 후 미국경제에 힘입어 경제가 풀리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예외가 없는 사실이다.
 
홍원탁 : 많은 사람들이 2차대전 당시 까지도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아르헨티나가 포퓰리스트 지도자 아래 나락으로 추락했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슨 짓들을 했기에 그 지경이 되었는지를 연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박지향 : 물론 선진화가 물질적 번영으로 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질적 번영은 선진화로 가야 할 길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렇게 가기 위한 조건은 경쟁적 시장경제다. 이런 점이 강조돼야 할 것이다.
 
홍원탁 : 생각이 다른 국민들을 적대관계로 설정해 국민들 상호간 죽기 살기 전쟁을 시켜선 선진국이 될 수가 없다. 아니 망하는 지름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갖지 않고 너는 국민의 적이고, 너는 빠져야 하고, 소수만 남아 끼리끼리 시대착오적으로 정의된 민주주의를 논한다면 선진국이 될 수가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을 하는 경쟁적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사회주의적 이상을 다양한 형태로 실현하는 것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다. 모두들 분배의 이상을 너무 지나치게 내세워 나라를 망치지 않으려고 노력들을 하는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도 표현만 그런 식으로 안하지, 다 마찬가지다.
 
-선진화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홍원탁 : 우리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수를 준 것이 이제부턴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지 않아도 되고 법치주의 안 해도 된다고 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박지향 :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입장에 따라 이에 대한 논란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성장하자는 측과 개혁하자는 측이 있는데, 자유민주주의의 틀까지 바꾸자는 주장을 하는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이각범 : 왜 개혁과 성장을 이분법적으로사용하는지 모르겠다.
 
홍원탁 : 영국의 대처 총리가 엄청난 개혁을 했다. 나는 열린우리당이 말하는 개혁을 그런 시스템의 개혁이란 뜻으로 이해했다. 대처는 영국경제를 고질적인 영국병으로부터 소생토록 했다. 그 다음 등장한 노동당도 대처리즘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다. 뻔히 망하는 길 인줄 알면서 그 방향으로 나라를 새삼 몰고 가는 지도자가 어디 있는가.
 
박지향 : 대처는 스스로 급진주의라 했다. 대처가 물러나게 된 이유는 대처의 개혁정책이 소외된 사람도 엄청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IMF 금융위기 이후에 시장경제를 엄격하게 도입하면서 직장을 잃는 사람이 속출하였다. 엘리트 뿐만 아니라 노조도 이에 대하여 불안해한고 있다. 밖으로 내몰리는 것과 소외되는 것을 우리 국민들도 두려워하고 있다. 경쟁적 시장경제가 우리가 갈 길이라 했지만 경쟁적 시장경제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전국민의 5~10%정도밖에 안될 것이다.
 
시장경제와 더불어 사회안전망 구축에 신경써야
 
홍원탁 : 북유럽 정부들은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지름길 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 정부가 할 일이다.
 
박지향 : 그런 식의 사회안전망이 확보되어 있지 않은 시장적 경쟁체제에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 성장을 하면 그 과실로 사회안전망을 같이 확보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상황인데 경제 상황를 저해시키지 않으면서 국민들이 위험부담을 덜 느끼게 하는 적정선이 어느 정도일지 집권층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각범 : 선진화를 위한 과제는 우선 시장경제의 확립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고 성장만이 아니라 분배도 조화롭게 추진해 성장의 과실을 다같이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국민의 동의를 얻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야만 성장을 위한 경쟁과 성장의 결과인 분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기본적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홍원탁(오른쪽 사진) : 성장을 위해 경쟁적 시장경제를 끌고 나가면 자연히 갈등과 사회긴장이 유발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것이 지나치면 성장이 불가능 해 지고, 부족하면 사회가 불안정 해 진다. 적정수준의 사회안전망이 무엇일가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지구상에 존재 해 본적이 없는 유토피아를 멋대로 상상하고 추구해서 성공할 확률은 제로다. 다른 나라들이 지나온 길을 보고 구체적으로 그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박지향 : 민주노동당이 내세우는 부유세의 경우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보면 젊은 층으로부터 대폭적인 찬성을 받고 있다. 사회안전망을 위해 세금을 과도하게 매기는 식은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다. 사회안전망 구축은 법을 통해서 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데 이를 세금이 다 빼앗아 가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법적인 테두리 위에 자발적인 기부문화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자발적인 기부문화를 북돋워주면 빼앗긴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대신 기부한 사람들은 기부행위를 통해 개인적 위신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돈 버는 사람들이 죄인이 되어버리는 사회이다. 대안은 돈 버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각범 : 부유세의 논리에는 우리나라의 부는 우리나라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전재가 있다 지금처럼 세계가 열린 경제를 하고 있는 마당에 세금을 과도하게 매기면 자본은 해외로 도망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원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세금을 매길 수 있겠는가.
 
홍원탁 : 어느 나라에서 그런 제도(부유세)를 해서 성공했는지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야 한다. 난 그 사례를 모르겠다.
 
박지향 : 민주노동당의 생각은 지금의 한국에서 조차 성장보다는 분배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굳이 외국의 예를 든다면 북유럽의 스웨덴 같은 나라가 될 것이다. 부유세도 북유럽처럼 10억 원 이상의 재산에 누진세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홍원탁 : 그러면 부유세라고 하지 말고 스웨덴처럼 급 상승률의 누진세라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정책을 제시할 때는 항상 구체적 사례가 있어야 한다. 독일이 지나치게 노동시장을 경색 시켜 저런 고생을 하니 이건 피해야 하겠다든지 스웨덴 방식의 부작용을 보니 저건 피해야겠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보고 정해야지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환상의 세계를 좇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푸줏간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에 의해 좋은 고기를 공급받아야
 
이각범 : 현재 집권세력들은 구체적 사례를 통한 접근이 아니라 적당히 못살더라도 같이 못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담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한 것처럼 푸줏간 주인의 자비심으로 좋은 고기를 얻으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의 이기심에 의해 좋은 고기를 공급받으려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시장경제는 이런 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홍원탁 : 공산주의 체제는 완전히 망했다.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고생을 좀 했지만 반성과 적극적 개선을 통해 살아남았다. 인간의 본성을 감안하면 국민의 생활수준을 지속적으로 향상 시킬 수 있는 경제체제는 경쟁적 시장경제 밖에 없다. 그렇지만 사회주의의 이상 중에서도 좋은 점이 많다. 그래서 시장경제의 매커니즘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 이상을 접목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선진국들이 모두 걸어 온 길인데 우리만 유독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전대미문의 길을 걷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불안하게 되는 것이다.
 
이각범 : 만약 지금 현재대로 간다면 상당히 비관적인데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이 우리가 갈 길이 될 수도 있다.
 
홍원탁 : 필리핀은 이념이 없었고 아르헨티나는 이념이 있었다. 이념부재의 필립핀도 빈곤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아르헨티나는 그 이념덕분에 경제적 석기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박지향 : 現 정부 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삼성전자, 엘지전자가 있는 한 망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에 휘둘리고 사회가 하향평준화로 가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지금처럼 계속 잘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반적인 하향평준화로 나아가고 있는데 앞으로 삼성전자라고 한들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지식기반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개혁 필요
 
이각범 : 세계가 지식정보사회로 가고 있는데 우리가 할 일은 우리도 지식정보의 수준을 높이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제일 먼저 교육개혁이 되어야 한다. 개혁의 방향은 지식경쟁력을 높여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 집권층의 개혁방향은 서울대를 없애고 고등학교까지의 평준화를 대학까지 연장해 전체적인 하향평준화를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다 교육의 질은 더욱 떨어지게 될 것이다. 과연 이러한 방향에서 선진화가 가능할 것인가.
 
홍원탁 : 선진민주국가에서는 대통령이 바보, 천치가 되어도 사회 각 분야가 시스템에 의해 제 갈 길을 가지만 우리 사회는 대통령의 영향력이 굉장히 큰 나라다.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있었던 때가 40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고등교육이 나올 수 있나.
 
이각범 : 독일은 대학간 특성은 있지만 서열이 없다. 이런 독일사회가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이용되는데 독일사례와 한국이 왜 비교가 될 수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독일은 인구에 비해 우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학수가 적다. 그리고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마칠 때 김나지움에서 고도의 인문교육과 과학교육을 기본으로 받아 소수 엘리트 코스로 가는 경우와 직업교육을 받을 대부분을 나누고 있다. 즉 트랙을 분리해서 교육을 하기 때문에 이미 초등학교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사람만 대학에 간다. 또 대학이 대학의 서열이 아닌 교수들의 수준에 의해 서열화가 되어 있다. 두 번째로 독일의 경우 경쟁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독일은 국립대학이 거의 없다. 거의 다 주립대다. 각 주에서 대학의 수준을 높이고 발전하기 위해 굉장히 경쟁한다. 공교육에도 좋은 교수를 초빙하기 위해 100만불씩 예산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교수의 수준이 높아지면 좋은 학생이 오고 그러면 그 학생들이 자신의 주에서 보다 우수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투자를 하는 것이다. 독일도 경쟁을 통하여 평준화가 되는 경우이지, 경쟁 없이 하향평준화하는 경우는 아닌 것이다.
 
박지향 : 독일에서도 최근 미국식의 대학을 만들겠다고 최근에 발표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경쟁체제가 있지만 더욱 경쟁적인 대학을 시범적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한 때 세계 제일을 자랑하던 과학수준이 떨어졌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영국도 독일과 비슷하게 어렸을 때부터 대학 갈 학생과 직업교육을 받을 학생들을 나누어 가르친다. 요즘 영국은 상당히 평준화된 셈이다. 옥스퍼드나 캠브리지같은 경우 너무 특권적이어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노동당에서 한 적이 있다. 또 이와 반대로 2년제 대학의 위상을 높여줬다. 지난 두 달 전 쯤 블레어 총리가 정치적 생명을 내걸고 대학개혁을 하려 한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이 학생들의 수업료를 대폭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대학에 보다 많이 투자하고, 경쟁적인 대학을 만들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같은 노동당에서 이에 대한 반대에 직면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야당인 보수당이 이러한 경쟁논리를 수용해야 하는데 정략적인 이유로 반대했다. 총리는 위기에 몰리고 사임의지까지 밝힌 바 있다. 사실 이렇게 정치생명까지 걸 필요가 없는데 블레어는 영국이 살아남기 위해 대학이 경쟁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5표 차이로 통과됐다. 이를 보며 ''이게 바로 선진국이구나''하고 느꼈다. 국가의 장래를 바라보고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하는 정치인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나.
 
홍원탁 : 국민들이 단순한 정치가들(Politician)과 국가적 지도자(statesman)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가는 사람을 패주면서 모두 놀고먹으면 나라가 잘살게 된다고 허황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뽑아주는 한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맨 사기가 통하지 않게 되면 선진국이 된다.
 
박지향 : 영국의 경우 어린아이들이 11살 때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 이후에 진로를 수정할 수 있는 많은 보완의 방법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같은 연령그룹에서 10%의 엘리트가 대학에 가는 것을 국가전체의 효율성 차원에서 비교해서 보면 후자의 효율성이 훨씬 높다. 문제는 10%의 엘리트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양반그룹을 비롯해서 이제껏 엘리트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홍원탁 : 지위가 독점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에 위험을 못 느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선진 사회에선 빌게이츠도 옛날 지주처럼 무위도식을 하면 생존하지 못한다. 빌 게이츠는 지금도 새것을 만들려고 정신이 없다. 경쟁을 배제하고 어떻게 발전이 가능한가.
 
박지향 : 사회주의의 이상에서 보면 출발선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다.
 
홍원탁 :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이 좋은 것이 많다. 나라를 망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것들을 살려야 할 것이다.
 
이각범 : 시장경제가 존재하지만 시장경제의 논리만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작동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논리를 기반으로 시장경제가 존재하도록 해야 한다. 마라톤을 공정하게 운영하여야 하지만 출발선상에 오지 못하는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참여하는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쟁의 선상에 서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박지향 : 경쟁체제와 평등지향적인 공동체의 이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의 문제이다.
 
이각범 : 시장과 공동체의 조화, 경쟁사회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보장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복지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도록 하자는 데는 대부분 이의가 없는데 방법에 있어 성장이 우선인지 분배가 우선인지의 차이가 있다. 분배를 강조하면 복지에 관심 있는 사람이고 성장을 얘기하면 복지에 관심 없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이 잘못이다. 결과적으로 성장은 분배의 물적 기반이다. 개혁이란 말도 무절제하게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혁의 방향과 결과를 얘기해야 한다. 우선 개혁의 구체적 내용이 있어야 한다. 성장과 개혁은 양극에 있는 상충관계가 아니다. 공정하고 잘사는 사회를 위한 개혁이어야 한다.
 
박지향 : 개혁을 독점할 필요가 없다. 내 생각을 따르면 개혁이고, 아니면 반개혁이라는 논리에 문제가 있다.
 
이각범 : 우리나라를 자주국가로 만들자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기들만이 개혁을 하는 자주세력으로 여기는 것은 자주국가를 만드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
 
박지향 :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많이 살려주는 체제가 자유주의다'란 말을 했다. 결국 태어날 때부터 우월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질시하거나 무시하지 않은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홍원탁 : 모든 선진국들이 그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해 온 것이다. 경쟁적 시장경제의 비인간적인면을 최소화시키는 황금률을 찾는 것이 성공한 선진국이 걸어온 길이다. 그런데 망한 케이스를 보고 따르려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각범 :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이 바른길로 가지 못하고 편향된 방향으로 간 첫 번째 이유는 엘리트들이 제 역할을 못해서이다. 독점적 지위(특권)를 지나치게 누려 노력한 만큼이 아니라 지대추구(rent-seeking)를 했고, 두 번째는 경쟁에서 한번 처지면 영원히 재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절벽 위의 줄타기처럼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안전망을 쳐줘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에 대한 자기혁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박지향 :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11살 때 대학진학을 위한 길로 정해지지만 나중에도 길이 변경될 수도 있다. 한 번의 경쟁으로 일생이 결정되진 않는다. 이렇게 많은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

이각범 :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균등이어야 하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람을 위한 안전망이 필요하다.
 
박지향 : 또 중요한 것은 민주화사회 이후의 반지성주의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각범 : 진입장벽 특히 시장진입장벽 등이 많이 있다. 위로부터의 장벽, 옆으로부터의 장벽이 모두 문제이다. 반지성주의를 만드는 ''무식의 독재''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박지향 : 대학의 과감한 구조조정이 있어야 한다. 경쟁력 없는 대학이 퇴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사회를 살펴보면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서른 살이 되어도 부모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홍원탁 : 대학을 포함한 모든 교육기관이 경쟁체제로 가야한다.
 
이각범 : 교육부가 지금은 상한에 대해 간섭하고 있는데 대학의 질을 갖지 못하는 곳에 대해선 대책이 없다. 하한을 오히려 강하게 감독해야할 것이다. 대신 상위권 대학은 자율적으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 한국에 유학 온 유럽 학생들과 대화하여 보니 두 가지에 놀랐다고 하더라. 하나는 한국의 국민소득 수준에서 많은 교육 투자를 하는 것이고, 둘은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고도 이정도 지식수준인가''라고 하더라.
 
박지향 :근본적 해결책은 사범대학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 대단한 인재들이 교사가 되어 과외가 필요 없게 하는 것
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범대 졸업생만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문학을 전공한 박사가 영어선생님이 되는 등 모든 사람이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장벽을 열어줌으로써 교사의 질을 높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필요한 개혁은 이런 분야다.
 
이각범 : 교육도 개혁-개방을 해야 할 것이다. 인천특구 외국인 학교의 경우, 전교조에서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 한국의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 국적 없는 교육이 되어서 국제적 미아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반대에서 도대체 기러기아빠를 만드는 조기유학에 대한 말은 왜 안하는가. 그 막대한 외화를 쓰고, 그 많은 가족을 헤어지게 하지 않는가. 교육경쟁력을 높이는 개방과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외국인 학교 설립에 대하여는 반대하면서 진짜 청소년 시대부터 외국에 내어보내는 교육이민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는다. 특구에서 교육과정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곳은 대한민국의 영토 안에 있지만 행정적인 권한에선 벗어난 곳이다.
 
이날 토론은 선진화의 정의와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결론은 시장경제체제를 기본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민주복지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이러한 선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교육제도가 바로 서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개혁이 이루어져야한다고 하였다. 나라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교육정책이 미래지향적이 되어야 하고 경쟁력 있는 대학교육과 각급하교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당연한 수순으로 전개되었다. 여당이 국회의 과반수를 확보한 지금, 집권여당은 역할에 따라 지금 상황을 위기로 만들 도 있고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부디 올바른 길을 선택하여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책이 실시되기를 많은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자주, 개혁, 민주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자신의 전유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정파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04-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