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멘토장인규 2008. 11. 14. 00:52


[그림]Sandro Botticelli (伊,1444-1510)◈ Christ Crowned with Thorns (1500)







그림을 클릭하면 큰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보티첼리의 聖畵"  





    1470년 경 보티첼리는  피렌체의 주권자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서
    산타마리아 노벨라성당의 제단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로렌처의 어머니 루크레지아 토르나부오니를 위해
    <유딧 Judith>를 그렸으며 그녀의 남편 피에로 고토소를 위해
    <위대한 마돈나 Madonna of the Magnificat>와
    <동방박사의 경배 Adoration of the Magi>를 그렸다.




[그림]Sandro Botticelli (伊,1444-1510)◈ Madonna Of The Magnificat(1483-85)

 





    그는 <위대한 마돈나>를 마돈나가 찬송가를 적고 있는 장면으로 묘사하면서
    로렌초와 줄리아노 형제를 각각 열여섯 살과 열두 살의 소년들로
    마리아가 쓰고 있는 책을 붙들고 있게 했다.




[그림]Sandro Botticelli (伊,1444-1510)◈ St Augustine (1480)

 




    중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서재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당시 인문주의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학문의 세계 속에 빠져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1480년 오니산티성당에 그린
    《성 아우구스티노(1480)》는 엄격한 사실적 표현으로
    초상화가로서의 역량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1500년에 같은 제목의 위 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림]Sandro Botticelli (伊,1444-1510)◈ Scenes from the Life of Moses(1481-2)






    보티첼리는 대부분의 생애를 피렌체에서 보냈고,
    유일하게 피렌체를 떠난 기간은 1481~2년으로 시스티나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서였으며, 그는 그때 페루지노, 로젤리,
    기를란다요와 함께 나란히 작업했다. 그가 시스티나 예배당을
    장식한 것만 봐도 당시 그가 유명한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Sandro Botticelli (伊,1444-1510)◈ The Temptation of Christ(1481-2)






    1481년 토스카나와 움브리아의 화가들과 함께 바티칸궁전의 시스티나성당의
    벽면을 장식하는 영예가 주어졌으므로 로마로 가서 모세와 그리스도의
    이야기 세 장면 즉 <모세의 시련>, <그리스도의 유혹과 나환자 치료>,
    <코라와 그 무리의 반역> 등과 교황의 초상을 그렸다.



[그림]Sandro Botticelli (伊,1444-1510)◈ The Punishment of Korah (1481-2)






    그리고 1482년 피렌체로 돌아와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1480년대 중기 이후에는 종교화에 전념하게 되어,
    《산바르나바의 성모(1480)》 《성모대관(1488∼1490)》
    《마니피카토의 성모(1485)》 《석류나무의 성모(1487)》 등
    성모화에 몰두하다가 1490년대에는 수난의 장면들을 주제로 삼았다.



[그림]Sandro Botticelli (伊,1444-1510)◈ Madonna of the Pomegranate(1487)







    이 시기에 그려진 2점의 피에타(그리스도교미술의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십자가에서 내린 그리스도의 시체를 무릎 위에 놓고 애도하는
    성모 마리아를 표현함)는 수도사 G. 사보나롤라가 주장하는
    세속화에 대한 비판과 신벌(神罰)의 예언을 믿은 보티첼리의
    종교감정의 고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Sandro Botticelli (伊,1444-1510)◈ Lamentation Over the Dead Christ (1490-2)







    보티첼리의 혼란했던 가치관에 사보나롤라라는 수도사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세속화를 비판하는 그로 인해
    보티첼리는 종교화에 매진한다. 그 광신적인 수도사는 신비로운
    예언 설교로 보티첼리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그림]Sandro Botticelli (伊,1444-1510)◈ Mystic Nativity  (1500)







    그러나 1498년에 사보나롤라가 이단죄로 몰려 처형된 뒤에 그린
    《신비의 십자가(1500)》 《신비의 강탄(降誕, 1501)》에는 이미 늙은
    그의 정신적 충격이 음울한 명상적 표현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 일로 여린 감성의 보티첼리는 충격을 받게 되고,
    음울한 그림을 그리다가 마침내 세상과 인연을 끊고 말게 되었다.

    《신비의 강탄(降誕, 1501)은 보티첼리의 거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이후의 10여년동안의 생존기간에는 어떠한 작품도 알려진게 없다
    이그림에 한해서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작 연호를 넣었다.
    화면 왼쪽에 적힌 장문의 그리스어 명문 속에 보티첼리 이름과 1500년이란
    연호가 보인다



"계속"


 

 

2006-05-09